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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로 남을 것인가, 국민이 될 것인가? [허수아비춤] 본문

자작글/감상, 비평

허수아비로 남을 것인가, 국민이 될 것인가? [허수아비춤]

ARooomy 2022. 3. 9. 11:09

“감기 고뿔도 남 안 준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왜 재벌들이 당신들에게 돈을 주겠는가.”(327쪽) 그렇다. 재벌들도 ‘사업’으로 시작해 ‘사업’을 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데 조금 오래전부터 우리들은 그런 재벌들, 대기업들의 사회환원에 대해 침을 튀기며 많은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에게 ‘돈 많이 벌었네. 기부 좀 많이 하지?’라며 강제성을 띈 말을 한다면 어떨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소설 속의 대기업인 태봉그룹의 서열 3위 간부인 강기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결국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335쪽)인 인간일 뿐이다.


<허수아비춤>의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껏 욕하고 싫어해온 대기업들의 일상을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을 중요시하는, 따지고 보면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꿈꾸는 생활을 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불법로비나 탈세 등을 마다하지 않고, 눈엣가시라도 되는 신문이 있으면 일절 광고를 끊어버리고, 이런 잡다한 일을 한 고급 간부들은 스톡옵션을 5억밖에 주지 않았다고 다른 대기업으로 옮긴다. 어떤가. 솔직히 말하면 재벌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생활이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허황
된 꿈을 꾸면서 우리는 노예가 되었다. 그것도 국가 권력과 재벌들의 “이중 노예”(322쪽)가 되었다.


우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이중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과 싸우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 속에서는 태봉 그룹의 1조 로비사건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인욱 검사와 로비관련 내용을 신문에 기재한 허민 교수가 그런 사람들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진실을 밝히려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는 것과 직책에서 잘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경제민주화실천연대(경민연)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그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우리는 지금 이들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재벌들의 부유한 생활에만 눈길을 돌리고 있다. 혹은 누구
에게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나마 재벌에게 압박을 가하는 많은 단체들, 시민들이 있기에 우리가 먹고 살 수는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도 그들에게 질책을 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우리 위에서 완벽하게 우리를 군림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소설 속 내용처럼 지금 우리 사회 자체가 경제의 개념으로 돌아가고 있다.


허민 교수는 신문에 기재했던 ‘불매 운동’과 관련된 내용의 칼럼을 지속적으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피 흘리며 정치민주화를 이룩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경제 범죄를 저지르는 기업들의 상품을 사지 않는, 소비자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불매’로 경제민주화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이는 <허수아비춤>의 주제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란 기업들이 투명 경영을 하고, 세금을 내고, 그리고 그런 기업들의 상품을 산 우리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서 진정한 복지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려운 일인가. 그저 불법과 탈세를 하지 않으면 될 뿐이다. 하지만 지금 대기업들은 투명하지도 못하면서 위에서 축적된 부가 아래로 흘러간다는 ‘트리클다운’ 현상을 운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민주화가 되었을 때 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일 뿐이다.


재벌들이 가장 크게 간과하는 것은 사회적 제도나 체제가 자신들의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에 큰 몫을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만을 생각할 뿐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묵인한다. 만약 우리나라의 재벌을 아프리카나 동남아로 옮겼을 때도 과연 같은 ‘재벌’로 성장할 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더 나은 인프라가 구축된 사회에서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 환원을 해야 하는 것이고 불법과 탈세는 비판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최근 ‘초과이익공유제’나 ‘성과공유제’가 주목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찌됐건 두 제도 모두 협력업체와 이익을 함께 나누어 상생협력하자는 점에서 사회 환원의 한 측면이다.


다시 한 번 강기준의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이라는 인간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는 대기업의 불법을 정당화하려는 말에 불과하다. 강기준은 소설 마지막에서 스톡옵션을 적게 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기업으로 옮긴다. 결국 저 말과 강기준의 행동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자본주의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대기업을 성장시킨 것은 그들만이 아니기에 복지에 좀 더 힘써야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깨우침’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이며,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다. 지금 우리는 미동조차 없는 허수아비가 아닌 국민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